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백인천/선수 경력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include(틀: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70주년 기념 OB 올스타)] [[경동고등학교 야구부|경동고]] 시절 야구선수로 뛰는 와중에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img_pg.aspx?CNTN_CD=IE001836002&tag=%EC%8A%A4%EC%BC%80%EC%9D%B4%ED%8A%B8&gb=tag|스피드 스케이트 선수]]로도 활동했고, 1961년 500m 고등부 대회를 싹쓸이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출중한 실력을 보유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두 번째 부인 사이에서 난 아들은 [[쇼트트랙]] 선수로 키우려 한 적도 있었다. 한편으로 야구선수로서의 능력은 더욱 뛰어나서 학창시절 "원자탄 투수" 이재환과 함께 배터리를 이루며 경동고를 당대 고교야구 최강으로 이끈 주역이었으며, 특히 1960년 한해 경동고의 성적은 무려 '''32승 2무'''로 그야말로 초고교급 야구팀이었고 백인천이야 말로 그 경동고의 핵심 선수였던 것이다.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837874_STD.jpg]] 1962년의 백인천. 1959년 [[이영민 타격상]]을 수상했고, 1960년 6월에는 [[동대문야구장|서울운동장 야구장]]이 개장한 이래 고등학생으로는 처음으로 홈런을 기록했으며, 그해 10월 일본 원정경기 때 [[메이지진구 야구장]]에서도 홈런을 쳤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고교생이 진구 구장에서 기록한 2번째 홈런이었다. 또한 1962년 1월, [[타이완]]에서 열린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최종일 [[필리핀]]과의 경기에서도 비바람을 뚫고 타이베이 송산구장 개장 이래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홈런을 날리기도 했다. 경동고 졸업 후 [[농협 야구단]]에서 활약했으며,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뛰어난 활약으로 몇 번이나 [[일본프로야구]]에서 스카웃 제의가 있었지만 당시 강하게 남아있는 [[반일감정]] 등의 이유로 번번히 무산되었다. 그러던 와중에 타이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준우승을 치하하기 위해 [[대한체육회]]에서 개최한 환영회에 선수단이 참석했는데 당시 대한체육회장이자 [[박정희]] 군사정권의 실세이던 [[이주일(군인)|이주일]] [[준장]]이 연회 도중 백인천에게 야구하면서 애로사항이 없느냐라고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일본으로 가고 싶은데 좀 도와주십쇼!!'''"라고 당돌하게 답했다. 사실 백인천은 선수권을 마치고 타이완을 떠나 일본에서 한국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중에, 한 재일교포 야구인의 주선으로 [[도에이 플라이어즈]]의 [[미즈하라 시게루]] 감독과 구단 관계자를 만나 가계약을 맺은 상태였다. 이에 당시 야구협회장이 펄펄 뛰며 반대하자 이 준장은 오히려 "이런 젊고 훌륭한 선수가 해외로 나가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면서 신문에 여론조사까지 의뢰했고, 결과는 80%의 국민이 백인천의 일본 진출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다. 결국 백인천은 일본식 이름으로 개명하지 않고[* 백인천을 일본식으로 읽은 Haku Jinten으로 활동했다.] 나중에 돌아와 병역의무를 완수한다는 조건 하에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병역 이행은 제대로 안했다. 1971년 [[병역비리]] 사건이 크게 터져서 잠시 귀국하였지만 사태가 수습되자마자 다시 일본으로 출국, '''[[중앙정보부]] 소속 첩보원'''으로 일본에서 병역을 필했다. 당시에는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었기 때문에 이런식의 편법이 가능했었다. 명목상 주어진 임무는 일본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임무였다. 당시 일본 중의원에서 타국의 첩보요원이 공공연하게 야구 선수로 활동해도 되냐고 실명이 거론될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졌지만, 주일한국대사관은 '''병역에 민감한 한국의 정서를 고려해 명목상 대사관 무관직을 준 것에 불과하다'''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이 역시 외신을 제대로 접하기 어려웠던 당시에나 가능했던 변명. 백인천 본인은 잠시 귀국한 사이 기초군사훈련 6주와 중앙정보부 요원교육 등 총 18주 교육을 받고 일본으로 돌아가 중정의 비밀 첩보요원으로 활동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이 어떻든 본인 입장에서는 이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긴 하다. 아니라고 한다면 빼도박도 못할 [[병역기피]]가 되기 때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